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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 산책

살다가 문득 / 김경훈 살다가 보면 문득안부가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다어쩔 수 없이 비켜간 사랑다 읽지도 못하고 접어버린 신문처럼그 마음을 다 읽지도 못하고 접어버린 인연살다가 보면 문득그 사람을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은 순간이 있다산다는 것이 그런거야혼자만의 넋두리처럼 흥얼거리다가다시 펼쳐보는 앨범속 사진처럼다시 걸어가보고 싶은 그때 그 길 그 사람붉은 노을에 기대어조용히 물들어가는 저녁무렵그 어깨 그 가슴에 다시 기대어한번 울어보고 싶은살다가 보면 문득그런 기막힌 순간이 있다.

5월과 유월 사이

환한 아침 / 이태수새벽에 창을 사납게 두드리던 비도 그치고이른 아침, 햇살이 미친 듯 뛰어내린다온몸이 다 젖은 회화나무가 나를 내려다본다물끄러미 서서 조금씩 몸을 흔든다간밤의 어둠과 바람소리는 제 몸에 다 쟁였지언제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냐는 듯이잎사귀에 맺힌 물방울들을 떨쳐 낸다네 마음보다 훨씬 먼저 화답이라도 하듯이햇살이 따스하게 그 온몸을 깜싸 안는다나도 저 의젓한 회화나무처럼언제 무슨일이 있어도 제 자리에 서 있고 싶다비바람이 아무리 흔들어 대도, 눈보라쳐도모든 어둠과 그림자를 안으로 쟁이며오직 제자리에서 환한 아침을 맞고 싶다.

천변의 유월 꽃밭

여름꽃/유승도그리움이 쌓여 피어나는 것이 봄꽃이라면,여름꽃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장년의 여인으로 다가온다맨가지의 애처로움 끝에 피어 숲의 푸르름을 불러내는 것이 봄꽃이라면,여름꽃은 나뭇잎 사이에서 드러나지 않게 웃는다울긋불긋 커다란 소리로 거친 산야를 수놓는 것이 봄꽃이라면,여름꽃은 작은 몸짓으로 소리없이 피고 또 진다

창포원 산책

7월 / 목필균한 해의 허리가 접힌 채돌아선 반환점에무리 지어 핀 개망초한 해의 궤도를 순환하는레일에 깔린 절반의 날들시간의 음소까지 조각난 눈물장대비로 내린다계절의 반도 접힌다폭염 속으로 무성하게피어난 잎새도 기울면중년의 머리카락처럼 단풍 들겠지무성한 잎새로도견딜 수 없는 햇살굵게 접힌 마음 한 자락폭우 속으로 쓸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