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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런 칠월

까닭 / 정호승내가 아직 한 포기 풀잎으로 태어나서풀잎으로 사는 것은아침마다 이슬을 맞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바짓가랑이를 적시며 나를 짓밟고 가는너의 발자국을 견디기 위해서다. 내가 아직 한 송이 눈송이로 태여나서밤새껏 함박눈으로 내리는 것은아침에 일어나 싸리빗자루로 눈길을 쓰시는어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눈물도 없이 나를 짓밟고 가는 너의 발자국을 고이 남기기 위해서다. 내가 아직도 쓸쓸히 노래 한 소절로 태여나서밤마다 아리랑을 부르며 별을 바라보는 것은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너를 사랑하기엔내 인생이 너무나 짧기 때문이다.

비 내리는 아침산책

지나간 자리 /정윤천 1모든 것들은 지나가고모든 것들은 머물다 간다비 지나가고 나면비 지나간 자리는 젖고비 지나간 자리는별만이 와서 말리고 간다이럴 때는, 별이 지나가고별이 머물다 간 것이 된다사람의 흉중으로도 때론 비 지나가고그 자리위로, 별이 머물다 가기도 한다. 2비 지나가고,별이 와서 머물다 갔더라도마음이 지닌 것 중에 못 말리는 것이 하나 있다비 지나가고,제아무리 별이 와서 머물다 갔더라도먼 곳을 향해 젖어 있는 눈시울은 같은 기억이 있다

우중 산책

살다가 문득 / 김경훈 살다가 보면 문득안부가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다어쩔 수 없이 비켜간 사랑다 읽지도 못하고 접어버린 신문처럼그 마음을 다 읽지도 못하고 접어버린 인연살다가 보면 문득그 사람을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은 순간이 있다산다는 것이 그런거야혼자만의 넋두리처럼 흥얼거리다가다시 펼쳐보는 앨범속 사진처럼다시 걸어가보고 싶은 그때 그 길 그 사람붉은 노을에 기대어조용히 물들어가는 저녁무렵그 어깨 그 가슴에 다시 기대어한번 울어보고 싶은살다가 보면 문득그런 기막힌 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