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여관에 가고 싶다 / 박완호
들꽃여관에 가 묵고 싶다
언젠가 너와 함께 들른 적 있는, 바람의 입술을 가진 사내와 붉은 꽃의 혀를 지닌 여자가 말 한 마디 없이도 서로의
속을 읽어 내던 그 방이 아직 있을지 몰라, 달빛이 문을 두드리는 창가에 앉아 너는 시집의 책장을 넘기리, 삼월의 은
행잎 같은 손으로 내 중심을 만지리, 그 곁에서 나는 너의 숨결 위에 달콤하게 바람의 음표를 얹으리, 거기서 두 영혼
의 안팎을 넘나드는 언어의 향연을 펼치리, 네가 넘기는 책갈피 사이에서 작고 하얀 나비들이 날아오르면 그날의 날
개에 시를 새겨 하늘로 보내리, 아침에 눈뜨면 그대 보이지 않아도 결코 서럽지 않으리
소멸의 하루를 위하여, 천천히 신발의 끈을 매고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의 전부를 남겨 두고 떠나온 그방,
나 오늘 들꽃여관에 가 다시 그 방에 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