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댜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 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로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아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이여,
오지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곳에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해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곳에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을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가국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11월의 나무들 / 장석주
저녁 이내 속에
나무들 서 있다
몸통에 감춘
수 천阡의 눈들,
산등선 겹겹 파도 가없이
밀려가는 걸
바라보고 서 있다.
11월 /정일근
혼자 내원에 들었다
정시 정각에 도착한 열차처럼
나는 가장 좋은 시간에 닿았다
잘 익은 과일들과 함께 걸어서 당도한 11월
나무의 1 과 1 사이로 황금빛 수평선 펼치고
그 사이로 겨울 철새는 풍경이 되기 위해
먼, 차가운 먼 북쪽에서 세차게 날개치며 돌아오는 중이다
물들기 위해 봄부터 함께 걷기 시작한 나뭇잎
한 장 한장, 햇살 되받아내며 눈부시고
바람은 차고 밝은 몸으로 찿아와
마지막 꽃씨와 풀씨를 날린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 원융무애의 바다에 당도하듯
내원의 나무가 걸어서 당도한 바다, 저 깊은 바다
먼저 물든 낙엽부터 먼저, 풍덩풍덩
미련 없이 돌아가는데
묵언하는 나무가 날기 위해 천천히 등을 굽힌다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 정희성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남아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
지금은 어디에 머물렀을까
어느덧 혼자 있을 준비를 하는
시간은 저만치 우두커니 서 있네
그대와 함께 빛났던 순간
가슴에 아련히 되살아나는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나부끼네
* 아메리카 원주민 아라파호족은 11월을 "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이라 부른다
11월 / 오세영
지금은 태양이 낮게 뜨는 계절,
돌아보면
다들 떠나갔구나
제 있응 꽃자리
제 있을 잎자리
빈들 지키는 건 갈대뿐이다.
상강(翔降) ,
서릿발 차가운 칼날 앞에서
꽃은 꽃끼리 , 잎은 잎끼리
맨 땅에
스스로 목숨을 던지지만
갈대는 호올로 빈 하늘을 우러러
시대를 통곡한다.
시들어 썩기보다
말라 부서지기를 택하는 그의
인동(忍冬) ,
갈대는
목숨들이 가장 낮은 땅을 찾아
몸을 눕힐 때
오히려 하늘을 향해 선다.
해를 받든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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