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돌 / 김원호
나는 어디서 굴러 왔는지
늘 의문을 지닌 채 살아왔습니다
홍수에 밀려
부대끼며 곤두박질치며
매년 조금씩 하류로 밀려왔지만
내 고향이 원래 어느 산골짜기인지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흘러 잊어버렸습니다
오랫동안 물 속에 머물기도 하고
더러는 맨몸을 햇빛에 드러내 놓은 채
일 년 내내 하늘만 바라보며 살기로 했습니다
내가 보고 듣고 한 사실들을
이제는 얘기할 힘도 없습니다
어떤 때는 이끼들이 온 몸을 덮기도 하고
어떤 때는 풀씨가 날아와
내 옆에서 꽃을 피우고 살다 죽기도 했지만
내 모진 목숨보다 더 긴 것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친구는 자갈채취선에 실려 가
시멘트 덩어리에 영원히 처박히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분쇄기에 가루가 되어
형체조차 없어졌지만
그래도 오늘까지 용하게 나는 목숨을 부지해 왔습니다
오직 바라는 건
그런 끔직한 일이 나에겐 일어나지 말기를 빌며
바다까지 무사히 굴러가는 일입니다
오늘도 한강을 다스리는
불도저의 불안한 엔진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서울의 명멸하는 불빛을 바라봅니다
나는 한강에 누워 있는 한 개의 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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