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인생을 읽다 / 고재종
페이지 페이지마다 저항한다
재미없고 어렵고 뻣뻣한 이따위 책이라니
건성건성 지루함을 뛰어넘고
알듯말듯한 문장만 내 마음대로 해석해버린다
하지만 행간에 얼크러진 미로들과
딱딱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발을 거는 맥락의 숲이 부르는 유혹들
그 속으로 다시 길을 잃는다
피로 씌었다니 온몸으로 읽어야지
나는 미련하고 오기 창창하여서
절벽에 부딪고 심연에서 소리지른다
그 어떤 책도 저 혼자인 책은 없다지 않나
수많은 이미지의 난무와 겹겹 숨어버린 의미를
제기랄, 한 귀퉁이에서 잡념이나 낙서하다가
다시 페이지 넘기면 삶의 황홀한 서정들
그 다음 페이지엔 죽음의 혹독한 서사
생과 사는 페이지의 앞뒤면으로 반복하는데
말도 안 되거나 말하기 싫어하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담론처럼
말하고 싶으나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들의
징후까지를 짐작해보는 시간은 깊고 깊다
이걸 혈투라고 해야 하나
혈투 끝 폐허거나 숭고라고 해야 하나, 내게
주어진 古典이 의도하는 것과
의도하지 않는 것까지 가늠해보는
여행은 겨우 끝났는데 길은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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