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 나팔꽃 / 이윤학 나팔꽃은 시름시름 앓다가도 동이 트면 훌훌 털어 버린다 후회란 원래 그런 졸속이다 괜히 피었다 싶다가도 피기 전으로 돌아가려 하다가도 어느 순간 언제 그랬냐 싶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나팔꽃은 뻥 뚫린 목구멍으로 자기 몫인 햇살을 받아 삼킨다 *共感 , 마음을 여는 시 2010.10.20
이파리 한잎 이파리 한잎 / 박정원 놓칠게 뭐란 말인가 놓지 말아야 할 것을 놓은 게 아니라 놓아야만 될 것을 놓았는지도 모를 일, 하필 내가 보고 있는 그때 보내려고 막 작정했는지도 모를 일, 보고 있다고 질 것이 지고, 지지 않을 것이 지지 않는 것 아닌데 서릿발 뒤집어쓰다가 그만 어미 손을 놓치고야마는 핏.. *共感 , 마음을 여는 시 2010.10.20
계단길 계단길 / 길상호 발목이 부은 할머니는 오르막 계단 길 몸뚱어리 하나만도 무거워 그림자 떼어놓고 오른다 난간을 잡고 헐떡이던 숨소리 잠시 민들레처럼 주저 앉아 샛노래진 얼굴을 닦는다 굳어버린 할머니 등처럼 꼬깃꼬깃 사연들 접혀있는 길 한 해 또 지나면 더 가팔라질 것인데 이승 고개 후딱 .. *共感 , 마음을 여는 시 2010.10.20
가을 노트 가을 노트 / 문정희 그대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못다한 말 못다한 노래 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 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 머잖아 한 잎 두 잎 아픔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아 벼 베고 난 빈 들녁 고즈넉한 볏단처럼 놓이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 *共感 , 마음을 여는 시 2010.10.20
강물 강물 / 노원호 강물은 누구와도 다투지 앉는다 누가 길을 막으면 돌아서 가고 그러면서도 앞서지 않고 차례로 간다 강물은 강물끼리 서로 손잡고 간다 *共感 , 마음을 여는 시 2010.10.19
투명한 가을 투명한 가을 / 길상호 줄기 하나에 매달려 담쟁이는 유리창을 닦습니다 종일 문지르다 붉은 목장갑이 다 닳습니다 헐거워진 장갑을 저 아래 툭, 던져 버리기도 하는데 그 자리에 파란 가을 하늘이 조용히 내려와 앉습니다 이제 맑은 눈동자를 보았으니 당신을 쓰다듬던 나의 손은 거둘 때가 되었습니.. *共感 , 마음을 여는 시 2010.10.19
희망 희망 / 신현정 앞이 있고 그 앞에 또 앞이라 하는 것 앞에 또 앞이 있다 어느날 길을 가는 달팽이가 느닷없이 제 등에 진 집을 큰소리 나게 벼락 치듯 벼락같이 내려 놓고 갈 것이라는 데에 일말의 기대감을 가져 보는 것이다 그래 우리가 말하는 앞이다 하는 것에는 분명 무엇이 있을 것이다 달팽이가 .. *共感 , 마음을 여는 시 2010.10.19
가을 가을 / 조병화 가을은 하늘에 우물을 판다 파란 물로 그리운 사람의 눈을 적시기 위하여 깊고 깊은 하늘의 우물 그 곳에 어린시절의 고향이 돈다 그립다는 거 그건 차라리 절실한 생존 같은 거 가을은 구름 밭에 파란 우물을 판다 그리운 얼굴을 비치기 위하여 *共感 , 마음을 여는 시 2010.10.19
미안하다 미안하다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共感 , 마음을 여는 시 2010.10.19
눈물 한방울 가을은 정말 이상한 계절이다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 볼 때 푸른 하늘 아래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 볼 때 산다는게 뭘까 하고 문득 혼자서 중얼거리며 나는 새삼스레 착해지려고 한다 나뭇잎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엷은 우수에 물들어 간다 가을은.. *共感 , 마음을 여는 시 2010.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