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 잔 술 한 잔 / 정호승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 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번도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 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共感 , 마음을 여는 시 2010.12.08
편지 편지 / 윤동주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숙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가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共感 , 마음을 여는 시 2010.12.08
홀로 인생을 읽다 홀로 인생을 읽다 / 고재종 페이지 페이지마다 저항한다 재미없고 어렵고 뻣뻣한 이따위 책이라니 건성건성 지루함을 뛰어넘고 알듯말듯한 문장만 내 마음대로 해석해버린다 하지만 행간에 얼크러진 미로들과 딱딱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발을 거는 맥락의 숲이 부르는 유혹들 그 속으로 다시 길을 .. *共感 , 마음을 여는 시 2010.12.08
쉰 쉰 / 최영철 어두침침해진 쉰을 밝히려고 흰머리가 등불을 내걸었다 걸음이 굼뜬 쉰, 할말이 막혀 쿨럭쿨럭 헛기침을 하는 쉰, 안달이 나서 빨 리 가보려는 쉰을 걸고넘어지려고 여기저기 주름이 매복해 있다 너무 빨리 당도한 쉰, 너무 멀리 가버린 쉰,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 할까봐 하나둘 이정표를 .. *共感 , 마음을 여는 시 2010.12.05
빈 자리 빈 자리 / 윤보영 그대 떠난 빈 자리에 무엇이든 채워 보려고 정신없이 다녔습니다 그러다 얻은 것은 그대 외에 채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결국, 자리를 비워 둔 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共感 , 마음을 여는 시 2010.12.04
되돌릴 수 없는 것들 되돌릴 수 없는 것들 / 박정대 나의 쓸쓸함엔 기원이 없다 너의 얼굴을 만지면 손에 하나 가득 가을이 만져지다 부서진다 쉽게 부서지는 사랑을 생이라고 부를 수 없어 나는 사랑보다 먼저 생보다 먼저 쓸쓸해진다 적막한 적막해서 아득한 시간을 밟고 가는 너의 가녀린 그림자를 본다 네 그림자 속에.. *共感 , 마음을 여는 시 2010.12.04
驛 驛 / 김승기 잎사귀 하나가 가지를 놓는다 한 세월 그냥 버티다 보면 덩달아 뿌리 내려 나무가 될 줄 알았다 기적이 운다 꿈속까지 따라와 서성댄다 세상은 모두 驛일 뿐이다 희미한 불빛 아래 비켜가는 차창을 바라보다가 가파른 속도에 지친 눈길 겨우 기댄다 잎사귀 하나 기어이 또 가지를 놓는다 *共感 , 마음을 여는 시 2010.12.02
가을에 가을에 / 김명인 모감주 숲길로 올라가니 잎사귀들이여, 너덜너덜 낡아서 너희들이 염주소리를 내는구나, 나는 아직 애증의 빚 벗지 못해 무성한 초록 귀때기마다 퍼어런 잎새들의 생생한 바람소릴 담고 있다 그러니 이 빚 탕감받도록 아직은 저 채색의 시간 속에 나를 놓아다오 세월은 누가 만드는 .. *共感 , 마음을 여는 시 2010.11.30
바다는 상처가 많다 바다는 상처가 많다 / 이명기 사람들은 이따금 등대가 서 있는 땅끝으로 가서 바다를 본다. 한 걸음도 더는 나아갈 수 없는 곳에서 함께 걸어온 길을 묶고 추억을 묶고 더러는 애인을 묶고 수평선과 발 밑의 바다를 번갈아 바라본다 . 만일 一生 傷處라면, 상처가 아무는 동안 내내 추억되는 것이 삶은 .. *共感 , 마음을 여는 시 2010.11.29
추억도 없는 길 추억도 없는 길 / 박정대 하늘은 신문의 사설처럼 어두어져갔다 주점의 눈빛들이 빛나기 시작하고 구름은 저녁의 문턱에서 노을빛으로 취해갔다 바람은 한떼의 행인들을 몰아 욕정의 문틈으로 쑤셔 넣었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무수한 욕망으로의 이동이라고 그날 저녁의 이상한 공기가 나의 등 뒤에.. *共感 , 마음을 여는 시 2010.11.25